축구장용 잔디·시공

피스퀸컵 계기로 미래지향적 여성축구 모색해야

골프장잔디박사 2007. 1. 15. 17:09
피스퀸컵 계기로 미래지향적 여성축구 모색해야
2006 피스퀸컵 국제여자축구대회가 국내 6개 도시에서 열리고 있다. 세계 강호들이 다 모였다. 부동의 세계 1위 미국과 그 영광의 자리를 노리는 브라질, 그리고 상향 평준화의 추세 속에서 끝없이 세계 최강의 자리를 넘보고 있는 캐나다ㆍ호주ㆍ덴마크 등이 참여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최강이자 세계적으로도 뛰어난 경기력을 자랑하는 중국과 북한이 불참한 것이 여러모로 아쉽지만, 그러나 실업 4개 팀으로 어렵게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는 한국 여자축구의 미래를 감안하건대 이번 피스퀸컵 대회는 상당히 의미 있는 대회라고 하겠다.

사실 우리의 여자축구 역사는 오랜 연륜을 가지고 있다. 기록으로만 봐도 50여 년의 역사가 된다. 그 첫 시작은 1949년 6월 서울에서 열린 전국여자체육대회인데 이 무렵 한국 축구의 산증인이랄 수 있는 고 김화집 선생이 선구적인 업적을 남겼다.

한국 여자축구 50년 역사

당시 중앙여중 교사였던 김화집 선생은 ‘여자가 무슨 볼을 차냐?’는 주위의 시선을 물리치고 중앙여중ㆍ무학여중ㆍ명성여중ㆍ서울여중 등 4개 팀을 독려하여 첫 대회를 성사시켰다.

그 후로도 명맥이 유지되긴 하였으나 흙먼지 펄펄 날리는 운동장에서 여자들이 공을 차고 뛰는 모습을 사절했던 우리 사회의 오랜 유교적 풍습과 스포츠 인프라의 빈곤으로 인하여 1980년대까지는 사실상 자그마한 동호회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던 것이 역시 김화집 선생이 스스로 감독까지 맡으면서 노력을 기울인 결과 1984년부터 여자축구대표팀을 운영할 수 있었고 90년대 들어 몇몇 실업팀들이 창단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의 여자축구를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여전히 걸음마 단계임이 여실히 드러난다. 세계에서 여자축구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는 역시 미국. 무려 855만명이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독일이 그 뒤를 이어 85만여 명이고 세계 강호들인 캐나다(47만여 명), 스페인(16만여 명), 스웨덴(13만 여명) 등이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이 5만명 가량이고 일본이 3만여 명을 넘겼으며 우리 나라는 5000여 명 수준이다.

물론 해당 분야의 축구 인구만으로 ‘실력’이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적어도 대표팀의 경우 중국과 북한, 그리고 우리나라도 세계 강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국제적인 기량을 갖추고는 있다.

그러나 나는 바로 이 점이 문제이며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정말 기량이 뛰어난 열한 명을 엄별하여 집중적으로 훈련해서 세계 강호들과 어깨를 겨루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에 속한다.

1년 내내 공 찰 수 있는 환경 만들어야

반면 수 많은 여성들이 어릴 때부터 공을 차고 그라운드를 뛰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공을 잘 차는 ‘선수’들이 등장하고, 그들에 의해 프로 리그와 다를 바 없이 1년 내내 공을 찰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현재 미국은 총 59개 팀이 W-리그, WPSL 등 두 개 리그 속에서 일상적으로 꾸준히 공을 차고 있으며 독일은 1부 리그 12개 팀과 2부 리그 24개 팀 등 총 36개 팀이 1년 내내 리그를 열고 있다.

아시아에서도 여자 축구 리그 운영은 상당히 발전한 셈인데 일본은 14개 팀이 1·2부로 나누어 리그를 진행하고, 중국은 8개 팀이 참여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세계 최강을 깜짝 놀라게 했던 여자축구의 영원한 ‘다크 호스’ 북한은 1부 8개 팀과 2부 22개 팀이 있어 혹한기와 혹서기를 제외한 모든 계절에 공을 찬다.

이러한 나라들의 여자 축구 리그 운영은 우리의 남자 프로축구 k-리그 보다 훨씬 더 많은 관중들의 열띤 관심 속에서 치러진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현재 실업 4개 팀으로 어렵게 유지되고 있는 한국 여자축구의 현황 속에서 뛰어난 기량의 선수를 발굴하여 세계 대회에서 성취를 이뤄내는 일이 급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피스퀸컵 대회는 안방에서 세계 여자 축구의 수준과 흐름을 일별할 수 있고 우리 여자 축구 선수들이 ‘홈 그라운드’에서 세계 강호들로부터 한 수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진정한 미래는 양성 평등과 문화 복지 실현에서

그러나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장기적인 과제를 반드시 설정해야 한다. 그것은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통해 여자 축구 리그의 초석을 다지고 이를 통하여 여자 축구의 파이를 확대하는 것이다.

남자 축구 k-리그도 근근히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인데 여자축구에 관심을 돌릴 틈이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지만 내 생각에 여자 축구가 활성화되는 것은 단순히 대표팀 강화를 위한 전략만은 결코 아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세계 강호들을 보라. 미국ㆍ캐나다ㆍ호주ㆍ덴마크ㆍ이탈리아ㆍ네덜란드. 그리고 이번 대회에는 참가하지 않았지만 프랑스와 스웨덴을 염두해 보면 모두가 부자 나라일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양성 평등과 문화 복지 차원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나라들이다.

이 강호들의 세계적 수준은 몇몇 뛰어난 선수를 집중적으로 양성해서 얻은 결실이 아니라 남녀 차별의 오랜 관습을 깨기 위해 범정부적으로 노력하고 생활 스포츠의 확대를 포함한 문화 복지 실현을 꾸준히 노력해 온 나라들이다.

그 속에서 여자들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그라운드를 뛰고 공을 찼던 것이며 그것이 결국 세계 최고 수준의 경기력과 리그 운영이라는 결실로 맺어진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나는 이제 한국 여자 축구도 몇몇 엘리트 선수 발굴에 의한 세계대회 참가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수많은 여자들이 곳곳의 잔디구장에서 맘껏 뛸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다.

이른바 ‘여학생’들이 과거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저마다의 창의와 상상으로 활기차게 성장할 수 있는 사회 문화가 절실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자 축구의 진정한 미래는 이러한 양성 평등과 문화 복지의 실현에서 자연스럽게 얻어질 수 있으며 바로 그러한 결실일 때에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 정윤수
2002 월드컵 당시의 날카로운 해설로 주목을 받은 문화평론가이자 축구평론가. 현재 문화비평지 ‘리뷰’ 편집위원 및 문화단체 ‘풀로 엮은집’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축구장을 보호하라’가 있다.